[공유] [납량 특집] 상주 할머니 6
오늘 애기도 미취학 시절의 애기입니다.
그날도 할머니와 아침에 버스를 타고 장에갔어요.
그리고는 그날 처음 가는 집으로 갔지요.
물론 무속인 집이었구요.
그날갔던 집도 들어서니 후덕해보이시는 40쯤되신 아주머니께서 반가이 맞아 주셨어요.
어머니, 어서오세요~~~
할머니께선 언제나처럼 당연하단듯이 안방상석에 가서 앉으셨고
난 할머니 무릎에
아주머니는 앞에 조심히 앉으시더니 잠시 덕담과 인사를 나누시고는
점심상을 봐오신다며 나가셨어요.
잠시후 언제나 딴집에서 먹는것처럼 푸짐한 점심상이 준비되어 왔어요.
그런데 딴 집에서완 좀 다른 반찬이 있더군요.
그땐 별생각없이 그냥 맛나게 먹기만 했는데 커서 문득생각해보니
그게 무너가 대단한것이란걸 알았어요.
아마제가 할머니를 따라다니면서 뵌분들중
그분이 가장 신기가 뛰어나신 분이었을꺼라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그반찬이 바로 갈비찜이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서 저 데리고 다니시면서
항상 그분들께 밥상에 고기를 준비하라 하셧지만,
대부분은 그냥 불고기나 빨리 할수잇던 음식이었습니다.
갈비찜은 금방 준비해낼수 있는 음식이 아니죠?
갈비가 있어도 핏물빼야하고 몇시간 졸여야 하는 시간많이 잡아먹는 음식이죠.
최소 한나절 이상 하루전에 시작해야 먹을수 있는 음식이잖아요?
그땐 지금처럼 해서 파는데도 없었는데.....
그분은 우리가 온단걸 최소 하루전에 아셨다는 겁니다.
그때 먹은 갈비는 미리 해놓고 데워서 내놓은 음식이 아니였습니다.
만들어 처음 내놓은 음식이었죠.
어려도 고기광사모 열성팬이었던 좋아는 척보면 앱~~~니다.
할머니는 뭘 번거롭게 이런걸 준비했느냐고 하셨고,
전정말 정신없이 먹었어요.
지금도 갈비찜은 제 사랑이거든요.
그많은 갈비가 어디로 다 들어갔는지
아주머니랑 할머니께선 겨우 한쪽 드셨는데
갈비 그릇은 이미 바닥나고............
많이 해놓았으니 꼭꼭씹어 많이 먹으라하시며
또 한그릇 퍼오셨어요.
아우!! 씐나! 씐나!
그러시며 아주머니께서 할머니께 그러셨어요.
어머니, 이번에 꼭좀 도와주세요.
제힘으론 어려울꺼 같아요. 하셨어요
할머니께선 손사래를 치시며,
무슨 소리냐? 자네가 이제 나보다 낮지.
다늙은 내가 무슨힘이 있어 자네를 돕겠나? 하셨고
아주머니께선 재차 무슨말씀이시냐고,
상주뿐 아니라 경상도 다뒤져도 어머니보다 신력이 쎄신 분이어디있다고 그러시냐며
애길 하시고는 간절히 할머니께 매달리셨습니다.
그렇게 간곡한 부탁을 여러차례 받으시고는 어렵게 허락을 하셨습니다.
내가 신력이 딸리는 애들이나 갓신받은 애기들은 도와주러 다니지만
자네처럼 만신이 된사람은 도와주지 않는건
자네도 잘알껀데 이렇게 사정을 하는걸보니
어지간히도 모진놈이간 보구먼.......알겄네. 하셨어요.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는 바로 일어서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용무만 끝나시면 더지체하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엉댕이가 너무가볍고 매몰차신 할머니.
언제나처럼 아주머니는 따라나오시며 흰봉투를 쥐어 드렸습니다.
한번도 무속인분들이 주시는 봉투를 거절하시는 법이 없으셨던 할머니께서
그날 봉투를 거절하시는걸 처음으로 봤습니다.
내가 뭐한게 뭐있다고 이러나? 주려거든 일 다끝나고 주시게나.
하시며 거절하셨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선 눈웃음을 치시며
아이참! 어머니두............
딸이 어머니 용돈도 못드려요?
가시면서 애기과자도 사주시고 어머니 담배도 사세요 하셨고,
할머니는 웃으시며 마지못해 받아 챙기셨어요.
아주머니랑 할머니랑은 다른 무속인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친밀감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싫다고 한번 말 꺼내셨으면 죽어도 싫으신 분이 할매신데......
그렇게 집에 돌아온후 2~3일후의 일입니다.
할머니께서 외출하실 복장으로 저희집에 오셨어요.
그리고는 제기 좋아야! 할미랑 놀러갈까?하셨고
전 당연히 좋다고 외출준비를 했습니다.
장날이 아닌데도 할매를 따라나가는건 좀처럼 없던일이었거든요.
할머니께선 어머니께 화야! 내 좋아 데리고 좀 나갔다 오꾸마 하셨고,
어머니는 예,그라이소 하셨죠.
어머니는 당신보다 더 당신의 아들을 아끼셨던 할머니를 따라가면
잘보호해 주신단걸 믿어 의심치 않으셨으니까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니 할머니께서
눈에 익은 길을 가셨고,
그곳은 몇일전 가봤던 갈비찜 아줌마네 신당이었어요.
집에 들어서자 그날은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족히 10은 넘는 사람들이 뭔가 분주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젋은 여자분도 있었고 남자도 있었고
할머니께서 들어서시자 모두들 하던일을 멈추고는
일제히 할머니께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완전 영화같은데 나오는 행님! 오셨습니까? 인사.
그리고 제게도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할머니께서 어지간히 제애기를 많이 하시고 다니셨나봅니다.
네가 좋아구나? 한마디씩 다 하셨고
전 어른들께 일일히 배꼽인사를 했습니다.
어른들께 귀여움 받는 첩경은 처음볼대 인사 잘하는거란걸
수년의 인생살이로 터득하고 있던 영악한 아이.
할머니께선 준비 상태를 이것저것 꼼꼼히 살피시고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기도 하셨고,
모두들 할머니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어요.
굿하러 갈 준비를 하던길이었는데
굿을 하시는 분은 그 갈비찜 아줌마였지만 그굿을 지휘하는건 누가봐도
심지어 어린제눈에도 할매였단걸 알수 있었어요.
음.........우리 할매가 여기서 대장이구나?
준비를 끝내고는 그때 나오기 시작한지 몇년 안되는 봉고차를 3대에 나누어 탓어요.
그때 사람이 저랑 할머니, 갈비찜 아줌마 빼고도 10명이 넘었어요.
두대는 사람이 타는 차였고, 한대는 운전석 조수석만 있고 짐싣는 그런차였죠.
봉고는 첨타봐서 무척 신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출발하고는 한참을 달렸습니다.
우리마을과는 시내서 반대편으로 한참을 들어갔어요.
물론 거기도 산골.
상주는 양사방으로 몽땅 산골짜기 밖에 없어요. 제 기억으론
그렇게 한참을 달려 어떤 마을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때 도착한 집에 우리마을에선 볼수없었던 커다란 기와집이었어요.
그집안 마당에서 굿이 시작되었지요.
아마 그집에 굿을 해야만 할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나봐요.
아줌마의 주도로 굿이 진행되고 할머니는 뒤에서
여러가지 지시를 사람들에게 내리시며 써포트하셨어요.
아주머니께선 작두도 타시고......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게 아줌마는 다른여자보다 기골이 장대하셨어요.
그당시 보통 다른 여자분들보다 키도 상당히 크셨고 중년 여인답게
통통하셨던걸로 기억하는데 작두위에서 막뛰고 하셨는데 어찌 발이 하나도 안다치셨던지...........
전작두를 타실때 예전 할머니가 하신말을 기억하고는
할매있어서 아줌마 다치면 어쩌냐고 했어요.
할매는 웃으시며 아줌마가 초대한거라 괜찮타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굿이 진행되었는데 뭔가 일이 뜻대로 되지를 않았나 봅니다.
해도 어느덧 저물어 가는데 굿이 끝나질 않았고,
할머니는 좋아, 많이 힘드나? 이래가 애는 굿판에 안데리고 다니려 한긴데....하시며 안스러워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때때로 순탄치 않게 끝나기도하고 어린애는 굿하는곳에서 잡귀도 들릴수 있어
안데리고 다니신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주머닌 간간히 할머니께 오셔서 뭔가를 애기하셨고 할머닌 코치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할머니가 옆에있던 제손을 잡으시곤 황급히 절 치마뒤로 숨기셨어요.
할머니의 행동은 뭔가앞에 해로운게 있을때 가족을 보호라는 어른들의 행동이었어요.
전, 깜짝 놀랐지만 할머니 뒤에서 고개를 빼쭉 내밀었죠.
그러나 제눈에 아무것도 안보였죠.
무슨일이지? 하고는 앞에 한번 , 할매얼굴한번 쳐다보는데
할매가 어딘가를 뚫어지게 쳐다보시더군요.
저도 할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쳐다봤어요.
근데,
아무것도 없는데 그곳을 보는순간 기분이 나빳어요.
안보이지만 뭔가가 있는 느낌?
할매가 그때 입을 여시더군요,
독한년 , 이제 떨어지네....................
그리고 잠시후 다시 입을 여시더군요.
저,저육시랄 년, 눈깔이도 없는 년이 뭘째려보고 있노?
저 독한년 표정좀 봐라..........마 확쫒아가서 눈 구댕이를 팍 쑤셔쁠까부다!!
그러시곤 욕을 한바탕 하시곤 계쏙 쳐다보셨어요.
잠시후 할매의 시선이 점점 움직이시더니 산속으로 들어가시더군요.
그러시고는 인제되었다고 저를 뒤에서 빼시면서 떠났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굿은 곧 끝났고 저희는 봉고차로 먼저 데려다 주더군요.
다음 장날 다시 그집엘 갔습니다.
그런데 평소랑은 다르게 그집은 손님을 받지 않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방에서 끙끙 앓고 계셨어요.
할매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많이 디나? 약은 먹었나? 빙원가야하는거 아니가? 하셨고
아주머닌 좀 쉬면 괜찮타고 진이 빠져 그런거 뿐이라 하셨어요.
밥차리려 하시자 할매가 됬다! 아픈아가 뭘차린다고..........
그냥 좋아랑 식당가서 묵을기다 하시곤 일어나시자
아주머니께서도 따라 일어나셨고,
흰봉투를 주셨어요.
그런데 봉투 두께가 평소 할매가 받으시던 봉투의 몇배는 두꺼웠어요.
할매는 뭘이리 많이 넣었노? 하시더니 평소와는 다르게 즉시 봉투를 여셨고,
봉투 가득든 파란 세종대왕님들을 보시더니 몇장(10만원정도)만 빼시고는 아줌마께 돌려드리려 하셨어요.
아주머니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시며
어머니 도와주신거에 비해 많은도 아니라면서 어머니 없었으면 어쩔뻔 했냐셨어요.
할매는 나도 그리 징한년일지 몰랐다시며 끝끝내 봉투를 돌려주시며
니몸다 추시리거든 어디어디 노인정, 어디어디 양노원 어디어디 무슨집에 이돈으로
쌀이랑 연탄좀 사서 넣어 줘라. 난 이거면 됬다 하셨어요.
그리고 그날은 할매랑 탕수육이랑 짜장면을 먹었죠..........개꿀맛!!!!
오늘 애긴 여기까지인데요.
사실 제가 몇일전에 아주머니를 만났어요.
요즘 할매 애길 쓰다보니 할매가 너무보고 싶어져서 할매를 뵙고 왔어요.
할매는 대구 근교의 공원묘지에 모셔져 계세요.
큰 외삼촌이 곁에서 자주 찾아 가신다고 거기 모셨죠.
할매돌아가시고 큰 외삼촌이 상주노릇도 다 하셨거든요.
저희 외조부모님은 선산에 모셔야 해서 어쩔수 없이 떨어져 계시네요.
같이 계시면 덜심심하실껀데..........
여러분이 궁굼해하시는 할매가 저와의 인연에 대해 말씀해 주신건 처음에 애기드렸듯이 없어요.
그냥 그애기만 하시곤 웃곤 하셨죠.
할매를 뵙고 상주에 갔었어요.
차로 한시간이면 가는 거리라서요.
제가 살던 마을엔 가지 않았어요.
이제 아무런 연고도 없는곳이고
어릴적 친구들도 다 마을을 떠났을꺼니까요.
어린시절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곳이 갈비찜 아주머니네 집이었어요.
길도 건물도 많이 변했지만
어렵지 않게 기억으로 찾을수 있었어요.
여전히 그자리서 살고 계시더군요.
이젠 60중반을 훌쩍 넘시긴 나이지만 그시절 모습이 여전히 있으시고
절몰라보셨는데 말씀드리자 깜짝 놀라시며 반가워 하셨어요.
그날 늦게까지 아주머니랑 애기하며 많은 애길 들을수 있었고,
할머니와 저와의 인연도 어렴풋이 짐작케하는 애기도 들었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던 애기이고
이애긴 시리즈가 끝날때 해드릴께요.
평범치는 않은 애기이고 왜 절 그토록 아끼셨나 짐작케하는 애기입니다.